A코드 찬양 – ‘천번을 불러봐도’ 악보 다운로드 및 묵상
안녕하세요, 십자가 사랑에 빚진 자 된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천 번을 불러도 또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나요?
오늘 함께 나눌 찬양은 제목만 들어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곡, ‘천번을 불러봐도’입니다. “천 번을 불러봐도 내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은…”이라는 첫 소절의 가사처럼, 우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닳고 닳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는 현재의 사건입니다. 주님이 흘리신 물과 피, 그리고 버리고 오신 하늘 보좌를 생각할 때 우리는 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찬양을 통해 무뎌졌던 우리의 마음이 다시 십자가 앞에서 녹아내리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천번을 불러봐도 가사
천번을 불러봐도 내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은 십자가의 그 사랑
나를 살리려 지신 그 십자가
모든 물과 피 나의 더러운 죄 씻으셨네
나를 향한 그 사랑 생명을 내어주사
영원한 생명을 내게 주심을 감사해
천 번을 불러도 내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은 십자가의 그 사랑
나를 살리려 하늘 보좌 버리신
나를 사랑하신 분 그 분이 예수요
천번을 불러봐도 찬양 묵상
천 번을 불러봐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 이유
우리가 어떤 노래를 천 번이나 부른다면 지루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예수’라는 이름과 ‘십자가’의 이야기는 부르면 부를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눈시울을 뜨겁게 만듭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 사랑이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내 영혼을 살린 실제적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나이가 들어도 눈물이 나듯,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눈물의 샘입니다. 눈물이 메마른 시대에, 십자가만 생각하면 다시 눈물이 솟는 순수한 영성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살리려 지신 그 십자가
십자가는 원래 흉악한 죄인이 지는 형틀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죄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찬양은 그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바로 “나를 살리려”입니다. 인류 전체라는 막연한 대상이 아니라, 바로 구체적인 ‘나’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주님은 그 무거운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져야 할 사망의 짐을 대신 지신 주님의 등이 떠오릅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당신이 죽기를 선택하신 그 결정 앞에 우리는 영원히 빚진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물과 피 나의 더러운 죄 씻으셨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의학적으로 이는 심장이 파열될 정도의 극심한 고통과 탈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남김없이 쏟아부으신 그 희생은 단지 육체적인 고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의 ‘더러운 죄’를 씻어내기 위한 유일한 세제였습니다. 내 노력이나 선행으로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 죄의 얼룩들이, 주님의 보혈 아래서 눈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나의 더러움과 주님의 거룩함이 맞교환된 그 십자가의 현장을 묵상할 때, 우리는 거룩한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생명을 내어주사 영원한 생명을 주심
거래에는 등가 교환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계산이 맞지 않는 불공정한 거래입니다. 주님은 가장 존귀한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가치 없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일시적인 목숨을 건져주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하늘의 생명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 것인지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결코 가볍게 여기거나 낭비하며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늘 보좌 버리신 나를 사랑하신 분
예수님이 오신 곳은 마구간이지만, 떠나오신 곳은 ‘하늘 보좌’입니다. 온 우주를 호령하는 왕의 자리를 박차고, 가장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사건. 이것을 성경은 ‘겸손’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릴 만큼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시나요? 내가 무엇이관대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으셨을까요. 이 ‘하늘 보좌 버리신’ 사랑을 묵상할 때, 우리의 교만은 무너지고 오직 겸손히 주님만을 높이게 됩니다.
찬양곡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멈추지 않는 눈물 – [애통함과 정화]
슬퍼서 우는 눈물이 아닙니다. 너무 고맙고, 너무 미안하고, 너무 사랑해서 흐르는 영혼의 눈물입니다. 이 눈물은 마음속에 쌓여있던 세상의 찌꺼기를 씻어내는 정화(Purification)의 능력이 있습니다. 천 번을 불러도 눈물이 난다는 고백 속에서 우리는 딱딱하게 굳어있던 마음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애통함과, 그 끝에 찾아오는 맑고 깨끗한 영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를 살리려 – [벅찬 감격과 가치]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의 목숨과 맞바꿀 만큼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할 때 느끼는 벅찬 감격입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라도,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세상은 나를 몰라줘도, 온 우주의 주인이 나를 살리려 목숨을 거셨다는 사실이 주는 압도적인 사랑의 무게감을 느끼게 됩니다.
씻으셨네 – [완전한 해방감]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입니다. 더러운 옷을 벗고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듯한 상쾌함이죠. ‘모든’ 물과 피라고 했습니다. 남김없이 다 쏟으셨기에, 나의 죄도 남김없이 다 씻겼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정죄함이 없는 자유와,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감사해 – [깊은 만족과 평안]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가 누리는 깊은 만족감입니다. 세상의 결핍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충만한 감사입니다. 생명을 주고받은 관계에서 오는 끈끈한 사랑의 확신이 우리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만드는 영적인 포만감이 가득합니다.
그분이 예수요 – [확신과 사랑의 고백]
마지막에 “그분이 예수요”라고 선포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을 부르듯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 막연한 신이 아니라, 나의 구체적인 구원자로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입니다. 나의 모든 사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유일한 분,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꽉 차오르는 사랑의 절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관련 성경 구절
| 구절 인용 | 성경 주소 |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이사야 53:5 |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8 |
|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 요한복음 19:34 |
|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8:9 |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빌립보서 2:6-7 |
|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 요한일서 5:11 |
|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 히브리서 9:12 |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20 |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요한일서 4:10 |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 사도행전 4:12 |
천번을 불러봐도 악보 다운로드

(A Major 키의 곡으로, 느린 템포의 발라드풍 찬양입니다. 전반부는 덤덤하게 고백하듯 부르고, 후렴구인 “천 번을 불러도”부터는 감정을 고조시켜 호소력 있게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첼로 같은 현악기와 함께 연주하면 더욱 깊은 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인사
오늘 함께 나눈 ‘천번을 불러봐도’가 여러분의 마음에 십자가의 붉은 사랑을 다시 새겨주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이름을 부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고, 내 영혼을 살리는 이름은 오직 하나, ‘예수’뿐입니다. 혹시 지금 마음이 메마르고 건조하다고 느끼신다면, 조용한 곳에서 이 찬양을 틀어놓고 예수님의 이름을 천천히 불러보세요.
천 번을 불러도 부족한 그 사랑이, 하늘 보좌 버리신 그 겸손이 여러분의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할 것입니다. 나를 살리신 그 십자가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감사하는 한 주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