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코드 찬양 –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우릴 사용하소서) 악보 다운로드 및 묵상
여러분에게는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의 삶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열망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함께 묵상할 찬양은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우릴 사용하소서)’입니다. 이 찬양은 우리의 소원이 개인의 안위나 성공이 아니라,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 되게”라는 가사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한 우리의 눈물 섞인 기도이자 거룩한 외침입니다.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우릴 사용하소서) 가사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 희생과 포기와 가난과 고난
하물며 죽음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 우리 교회는 이 땅의 희망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 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성령 안에 예배 하리라 자유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사역 하리라 교회는 생명이니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우릴 사용하소서) 찬양 묵상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소원을 가지라고 부추깁니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명예, 더 편안한 삶을 꿈꾸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찬양은 우리에게 “소원이 하나 있네”라고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이것은 삶의 목적이 분산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그분의 몸 된 교회에 집중되어 있다는 ‘거룩한 단순함(Holy Simplicity)’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 고정되어 있을 때, 세상의 헛된 욕망들은 힘을 잃고, 오직 주님을 향한 순전한 열정만이 남게 됩니다.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우리가 교회를 사랑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의지나 감정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악세사리가 아니라, 우리 심장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생명을 버리신 그 사랑을 알기에,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때로 흠이 보이고 부족해 보여도, 십자가 사랑이 우리 가슴에 살아있다면 우리는 끝까지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품을 수 있습니다.
희생과 포기와 가난과 고난
이 찬양에서 가장 비장하고 무거운 부분입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낭만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희생과 포기와 가난과 고난”을 감내하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대가 지불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늘 보좌를 포기하고 가난하게 되셨듯이, 우리 또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나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좁은 길을 걷겠다는 결단입니다. 편안한 신앙생활을 거부하고,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따르겠다는 이 고백은 오늘날 안락함에 젖은 우리의 영성을 날카롭게 찌릅니다.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 되게
이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은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고, 예배가 형식화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 되게”라는 간구는 본질로 돌아가자는 절박한 호소입니다. 건물이 화려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이 회복되는 것, 프로그램이 세련돼지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진짜 부흥입니다. 하나님은 이 회복을 위해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 바로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교회는 이 땅의 희망
세상은 교회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할지 모릅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도 교회의 연약한 모습에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찬양은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땅의 희망”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기관이나 이념도 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교회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이 어두운 세상의 유일한 대안이자 희망입니다.
찬양곡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비장한 결의와 헌신 (하물며 죽음조차)
“하물며 죽음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라는 가사를 부를 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비장함’이 솟구칩니다. 초대 교회 순교자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나도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바치겠다는 결단입니다. 이 감정은 미지근했던 우리의 신앙을 뜨겁게 달구고, 타협하지 않는 야성을 회복시켜 줍니다. 죽음도 끊을 수 없는 사랑, 그 강력한 힘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용사가 됩니다.
간절한 목마름과 갈망 (우릴 사용하소서)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며 우는 느헤미야의 심정처럼, “우릴 사용하소서”라고 외칠 때 ‘간절한 목마름’을 느낍니다. 단순히 나 하나 복 받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고 싶다는 영적 갈망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기에 더욱 주님의 손에 붙들리기를 소원하는 이 간절함은, 우리를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깨워 기도의 자리로, 헌신의 자리로 이끌어 줍니다.
벅찬 소망과 긍지 (이 땅의 희망)
세상의 조롱 속에서도 교회가 ‘희망’임을 선포할 때, 거룩한 ‘긍지’와 ‘벅찬 소망’을 느낍니다. 내가 속한 이곳이 세상의 빛이라는 자부심, 하나님이 이 공동체를 통해 세상을 치유하실 것이라는 기대감이 차오릅니다. 현실은 초라해 보일지라도 영적인 실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패배감이 아닌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애통하는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
교회를 생각할 때 눈물이 나는 마음, 바로 ‘애통하는 사랑’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아파하는 것을 볼 때 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것은 절망적인 슬픔이 아니라, 어머니가 아픈 자녀를 품듯 교회를 위해 밤새워 기도하게 만드는 거룩한 사랑의 에너지입니다. 십자가 사랑이 내 안에 흐르기에 가능한 기적 같은 사랑입니다.
성령 안의 자유함 (자유의 마음으로)
비장한 헌신 뒤에 따라오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 ‘참된 자유함’입니다. “성령 안에 예배 하리라 자유의 마음으로”라는 고백처럼, 억지로 하는 의무가 아니라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드렸는데 오히려 더 자유로워지는 역설적인 은혜. 세상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주님의 멍에를 멜 때 느끼는 가벼움과 해방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관련 성경 구절
| 성경 구절 | 말씀 내용 |
| 마태복음 16:18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 에베소서 5:25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
| 하박국 3:2 |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
| 로마서 12: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 사도행전 20:24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 골로새서 1:24 |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 요한복음 4:24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 이사야 6:8 |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
| 고린도전서 15:58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 요한계시록 22:20 |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우릴 사용하소서) 악보 다운로드

마지막 인사
오늘 함께 나눈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우릴 사용하소서)’,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절박한 기도이자 신앙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교회를 통해, 그리고 “나를 보내소서”라고 헌신하는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해 이 땅을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 이 찬양의 가사처럼 기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 되게 하소서.”
여러분의 눈물 어린 기도가 진정한 부흥의 씨앗이 되어 싹트기를 축복합니다!
